[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방인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전반적인 스토리를 소개하면, 주인공인 뫼르소의 어머니가 죽은 후로 일이 시작된다. 뫼르소의 어머니는 요양원에 있었고,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서 슬퍼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뫼르소는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서 마리라는 여자와 영화도 보고 해수욕도 가면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슬퍼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레몽의 정부를 불러들여서 정사를 나누고 두들겨 패주기위한 의도가 나쁜 편지를 쓰는데 도움을 준다. 그저 레몽이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다. 레몽은 실제 자신의 정부를 불러들여 때리고, 뫼르소의 레몽 편을 드는 증언으로 처벌도 받지 않게 된다. 그렇게 레몽과 뫼르소는 자주 어울리는 사이가 된다.
레몽의 정부의 오빠들(아랍인)이 그들을 미행하고, 실제 해변에서 레몽을 구타하고 상처를 입힌다. 상황이 종료되고, 뫼르소는 다시 해변으로 산책을 갔다가 아랍인들중 한명을 마주치게 되고, 그 아랍인은 공격 의사가 없었으나, 그가 계속 다가가자 칼을 뽑았다. 햇빛에 비친 칼날에 눈이 부셔 그는 아랍인에게 총을 쏘아 죽이게 된다.
" 나는 한 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랍인이 죽은 다음에도 네발의 총을 더 쏘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그 어떤 거짓말이나 포장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사실과 감정을 이야기 하여 사람들에게 그 어떤 동정도 얻지 못했다.
그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은 오로지 한 장면이었는데, 사형을 선고받고 사제가 찾아와 회개를 종용하는 장면이었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 버렸다.
그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느냐?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사제에게 감정을 표출하고 평온해지면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나 역시 뫼르소와 같을 때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나의 차이점은 나는 최대한 내 일반적이지 않은 감정을 숨기고 싶다는 점이고, 뫼르소는 거짓말이나 꾸밈 없이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모두가 슬퍼할 때 슬퍼하지 않을 때도 있고, 관심이 없을 때도 많다. 숨기려고 해도 잘 숨겨지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남들과 같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래도 상관없을 때가 많지만,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로 나의 생각을 바로 잡는 일이 어쩌면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은 다양하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내 생각은 나에게는 옳고 정당할 지 모르나, 타인에게는 옳지 않을 수 있다. 가끔은 솔직함보다는 위선적인 마음이 세상을 아름답거나 살만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