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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

[TED]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 브레네 브라운

by 공펄양 2020. 6. 19.

지난번 TED 휴스턴 강의 다음 날, 저는 생애 최악의 소위 취약성 숙취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실제로 3일 정도,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죠.

처음 집을 나선건 친구와의 점심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친구가 먼저 와 있더군요.

테이블에 앉았더니 친구가 그러더군요.

"오마이갓, 너 얼굴이 왜그래?"

제가 대답했죠.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 사실 아주 엉망이야"

"내가 며칠 전에 500명 앞에서 내가 취약성 연구가가 되었다고 말했어.

내 데이터들에 의하면 온마음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 필수요건이 취약성이었다고 했어.

그러고는 그 500명 앞에서, 내가 정신적 '붕괴'를 겪었다고 말했어.

붕괴라고 쓴 슬라이드까지 보여줬다니까? 대체 왜 그런 걸까?"

친구가 위로했어요.

"나는 생방송으로 봤어. 평상시 네 모습이랑은 달랐지만 아주 좋았어."

제가 말했죠.

"아니야. 그래선 안돼. TED는 유튜브에 그 강이를 올린단 말이야. 보는 사람이 600~700으로 늘어날 거란 말이야."

그랬더니 친구는 "이미 늦은것 같은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었죠.

"우리 대학때 좀 와일드하고 멍청했잖아."

친구도 수긍하더군요.

"그때 우린 남친 자동응답기에 못된 말을 남겨놓곤 했잖아.

그러면 어쩔수 없이 밤에 기숙사에 침입해서 녹음을 지워야 했었지."

그랬더니 친구가 이러는 겁니다. "난 그런적 없는데"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뭐였겠어요?

"어. 그.. 그래. 나도 안 그랬지. 나도 정말로 그런 적은 없어"

그러곤 생각했어요.

'브레네, 지금 뭐하는 거야? 그 얘기가 갑자기 여기서 왜 튀어나와? 너 정신 나갔니?

네 자매들이 이런 너를 보면 정말 고소해 하겠다.'

친구가 말했어요. 

"너, 정말 TED에 침입해서 유투브에 올리기 전에 동영상을 훔치려고?"

전 소심하게 "아니, 그냥 잠깐 생각해본 것 뿐이야."

친구 말이, "와! 너는 정말 구제불능의 취약성 1인자구나!" 했어요.

그때 친구를 보면서 당시로선 꽤 비현실적인 얘길 했어요. 결국 그 말이 사실이 되고 말았지만.

"그 500명이 1,000명, 2,000명으로 늘어난다면, 내 인생은 끝장이야!"

(웃음)

400만 명이 시청할 것에 대비한 대책같은건 없었어요.

(웃음)

제 인생은 정말 끝나고 말았죠. 

이전의 인생을 끝마치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이걸 배울 때였습니다.

제 연구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까봐 조바심 냈던 것만큼이나,

나의 일부가 끔찍이도 스스로를 제어하려고 노력했단 겁니다.

내 레이더망 안의 '작은 나'로 남도록 유명세를 적당히 유지하려고 말입니다.

그렇게 작년을 보내면서, 두 가지 배운게 있습니다.

첫째, 취약성이 '약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취약함이 약점이라고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여러분께 질문하죠.

그 전에 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상담사이기 때문에, 제 질문이 심기를 건드릴 수도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제 질문에 손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스스로가 취약한 무언가를 하거나 취약성에 대해 말할 때, '취약하다는건 약하다는 뜻이야' 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취약성과 약점이 동일한 의미라고 생각하는 분?

대부분 그렇군요

그럼 다른 질문을 드리죠. 

이 TED 주간의 강의에서 무대 위의 누군가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낸 순가, 그걸 '순수한 용기'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취약함은 약점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취약성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감정적 리스크, 드러내기, 불확실성, 그리고 그런 것들이야 말로 우리 인생의 원료입니다.

12년의 연구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취약성이야말로, '용기'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잣대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무력함을 느끼고 자기를 드러내고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TED 강의에서 유명세를 탄 후에, 전국 각지의 강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학교, 학부모회의, 포춘 500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은 전화를 해서 이러더군요.

"TED 강연이 너무 좋았어요. 강의를 부탁하고 싶어요. 다만 취약성이나 수치심에 대해선 언급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어떤 내용으로 해주길 원하세요?"

크게 세 가지를 원하더군요.

특히 비즈니스 분야에서요.

'혁신', '창의성' 그리고 '변화'

(웃음)

그러니 여기서 명확히 말씀드리죠.

취약성이야말로, 혁신, 창의성, 변화의 진정한 원천입니다.

(박수)

창조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그것 앞에서야말로, 우리 모두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 그것 역시 모두 취약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취약성과 용기의 상관관계를 깨닫게 되면서 제가 두번째로 배운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저야말로 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저는 이름바 '취약성 연구가'였기 때문에 TED에 초청되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제가 예를 들어드리죠.

석달 전에 아이들한테 줄 고글이나 보호대 같은걸 사려고 스포츠용품점에 간 적이 있습니다.

3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취약성 TED, 취약성 TED!"

(웃음)

저희 집안은 5대째 텍사스에서 살았어요.

우리집 가훈은 "일발 장전"이죠.

저는 취약성을 연구할 뿐이지, 태생적으로 취약한 연구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혼잣말로 '그냥 가자, 가' 하고 앞만 보고 가고 있었죠.

다시 고함소리가 들리더군요. "취약성 TED!"

고개를 돌리니까 그 여성이 코앞에 있었어요.

"당신이 바로 정신적 붕괴를 겪었던 바로 그 수치심 연구가군요!"

(웃음)

주위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자기품으로 끌어당기면서 '보지마'하는 시늉을 했어요.

그때 제가 좀 민감해있던 터라 이렇게 대꾸해줬죠.

"정신적 각성이라고요, 젠장!"

(웃음)

그 여성이 나를 돌아보면서 이러더군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웃음)

"우리 북클럽에서 TED 강의를 듣고 당신 책을 같이 읽고 나서, 클럽명을 바꿨어요."

"붕괴된 여자들"

우리 태그라인은 이거죠.

"우린 산산히 부서졌어. 하지만 기분 정말 짱이다!"

(웃음)

상황이 이러니 교수회의에서 어땠을지 상상해보세요.

그렇게 전 '취약성 TED'가 됐어요.

액션피뷰어나 닌자 바비처럼.

수치심에 관해선 6년이나 연구했으니, 이쯤 할까 생각했어요.

취약성에 대해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기 시작하면서,

'다행이야, 수치심에 대해선 누구도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잖아' 하고 안도했죠.

비행기 옆자리 사람 입을 막고 싶을 때 최고죠.

"뭘하세요?"

"수치심을 연구해요."

"아.."

"나는 당신을 꿰뚫어볼수있어요."

(웃음)

하지만 작년 이전 인생을 끝내고 새롭게 살아나면서, 매우 중대한 원식을 하나 다시 세웠습니다.

연구가로서의 원칙이 아니라, 제가 자라오면서 배웠던 가장 기본적이고 도덕적인 원칙.

'너를 댄스파티에 데려간 그 사람과 꼭 춤을 춰라!'

제가 혁신, 창조, 변화에 대해 배운건 취약성을 연구하면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일련의 이 모든 것을 '수치심'을 연구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을 '수치심'이라는 세계로 데려갈겁니다.

융 심리학자들은 수치심을 일컬어 '영혼의 진창'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거기로 들어갈 겁니다.

목적은 거기에 집을 짓고 살려는게 아닙니다.

장화를 신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길을 찾아보기 위함입니다.

이유는 이겁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시대보다 대화를 원하는 간절한 비명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두 말입니다.  안그런가요?

네,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치심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 대화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차별에 대해 말하지 않고 인종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차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수치심 때문에 마비 상태가 됩니다.

수술 중 환자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을 막는 아주 단순한 해결책에 대해 들었습니다.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만들려면 수치심을 건드려야 합니다.

치료기술만이 아니라 자신의 자존감을 봉합하고 강해지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강해진 사람들은, 더 이상 체크리스트가 필요 없어집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TED 발표자 이름을 적어두었는데, 자 여기.

미쉬킨 잉가왈레 제대로 발음했나요?

첫날, 그의 강의를 봤습니다. 여기 서서 설명했죠.

별것 아닌 걸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빈혈 진단기술 개발에 얼마나 힘썼는지.

"저는 필요를 보았고, 그걸 만들었습니다!"

그가 말했을 때 모두가 예스를 외치며 박수를 터뜨렸죠.

그때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2차례나 더 시도해야 했습니다. 그제야 작동하더군요."

TED의 가장 큰 마력은 뭔지 아십니까?

전 이 말을 하는 이 순간을 정말 기다려 왔습니다.

TED는 일종의 '실패 컨퍼런스'입니다. 정말 그래요.

(박수)

왜 이곳이 멋진 줄 아십니까?

여기 사람 중엔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이 무대에 오른 사람 중에서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도 매우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여러번이나. 하지만 세상은 이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테어도어 루스벨트가 한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경기장의 전사'라고 부르는 명구죠.

 

"위대한 사람은 평론가가 아니다.

관중석에 앉아서 선수가 뭘 어찌했고 그렇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는지

지적하는 그들이 아니다.

영광은 먼지와 피와 땀으로 범벙이 된 채

경기장에 뛰고 있는 자의 몫이다.

앞서면 이길 것이요, 뒤지면 질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고 패배했다 해도 그는 담대하고 위대하게 진 것이다."

 

제게 있어 TED가 그렇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경기장 안에서 담대하게 뛰는 것. 경기장 문에 손을 대고,

"자, 이제 들어가야지. 한번 해보자!"하고 결심할 때 수치심이라는 괴물은 당신 귀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넌 훌륭하지 않아. 넌 MBA도 없고, 아내한테도 버림 받았어. 너희 아빠가 룩셈부르크에 가셨다고 했지? 씽씽교도소에 있었던거 다 알아."

"난 네가 성장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아."

"넌 네가 예쁘지 않다고, 똑똑하지 않다고, 재능이 없다고, 파워가 없다고 생각하는거 다 알아."

"네가 CFO가 됐는데도, 네 아버지는 신경조차 안 썼지?"

수치심은 바로 그런 겁니다.

그놈 입을 막고 경기장 문을 열어제치고, '그래도 하겠어!'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기 관중석에 앚아서 우릴 가리키며 평가하고 조롱하는 평론가 중 99%는 누구던가요?

우리 자신입니다.

수치심은 두 가지 굴레로 우리를 묶어둡니다.

"넌 훌륭하지 않아!"

이 첫 번째 굴레에서 벗어나면 두 번째가 기다리죠.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수치심에 대해 이해하려면 우선 그게 죄책감과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수치심은 '자신'에게 향해 있고, 죄책감은 '행위'에 맞춰져 있습니다.

수치심은 '나는 나쁘다'입니다. 반면 죄책감은 '나는 뭔가 나쁜 짓을 했어'입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 저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그럼 몇 분이나 제게 와서 "죄송합니다. 실수를 했어요."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게 죄책감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

수치심은 이겁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예요."

이 둘은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꼭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치심이야말로 중독, 우울, 폭력, 공격성, 왕따, 자살, 식이장애 등과 매우 연관성이 높다는 사실입니다.

또안 알아두셔야 할 것은, 죄책감은 이것과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다른 방향으로 행동했거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걸 바로잡고 싶어하는 능력으로 적응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죄책감 역시 불편한 감정이긴 합니다만,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또 하나 수치심의 특징은 성별에 따라 그 배열이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수치심이 저 브레네와 남자 크리스를 스치고 지나가면 그 느낌은 비슷합니다.

여기 계신 모두들 수치심이 스쳐갈 때의 느낌을 잘 알고있을 겁니다.

그걸 못 느끼는 유일한 사람은 공감과 연결능력이 없는 이들일 것입니다.

"수치심을 느낍니다."와 "난 소시오패스입니다." 중에서 선택하라면, 수치심 쪽을 선택하겠죠.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수치심의 느낌은 유사하지만, 성별에 따라 그 배열이 달라집니다.

여성의 경우, 가장 좋은 예를 엔졸리 향수 광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빨래를 널고 도시락을 싸고 키스로 봉해서 가족에게 주고 출근해 9시에서 5까지 일해요.

퇴근길에 베이컨을 사서 프라이팬에 굽고 당신이 나의 남자라는 걸 잊지 못하게 하죠.'

여성의 수치심은 '힘든 내색도 없이 모든걸 완벽하게 해야해'입니다.

저 광고로 향수를 얼마나 팔았는지 모르겠지만, 동시에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 판매량도 늘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여성의 수치심은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고 만들어진 이 불가능하고 모순되며 경쟁적인 기대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구속복과도 같습니다.

남성의 수치심은 경쟁과 기대로 뒤엉킨 양상을 보이진 안습니다. 단 하나죠. '약함 들키지 말 것'

사실 연구를 처음 시작하고 4년 동안은 남자들은 인터뷰하지 않았습니다.

한 남성분이 제 책을 들고와서 사인을 해달라며, 묻기 전에는요.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왜 남자들 얘긴 없죠?"

"전 남자들은 연구하지 않아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말하더군요. "그것 참 편리하네요."

(웃음)

왜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손을 뻗어 우리 이야기를 하고, 취약함을 드러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책에서 한 말이 오직 제 아내와 세 딸을 위한 거란 말인가요?"

전 그렇다고 했어요. 그분은

"가족들은 내가 낙마하는 걸 보느니 이 백마위에서 죽어가는걸 보고 싶어 할겁니다.

우리는 연약해져서 도움을 청하면, 진창 얻어맞기만 합니다.

그게 모두 남자들, 아버지나 코치들 때문이라고 하지는 마십시오. 

제 인생에서 여자들은 누구보다 절 힘들게 했으니까요."라고 말했브니다.

그래서 전 남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배운 건 바로 이겁니다.

자기 곁의 남자가 취약하고 두려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면 그 여성은 그야말로 놀라운 업적을 이룬 셈입니다.

당신 곁의 남자가, 당신이 이 모든 걸 해낼 수 없어서 그래서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 됐을 때

"왜 이래, 식기세척기는 내가 돌렸잖아"라고 말하는 대신 그냥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한다면,

그 남성 역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셈입니다.

(웃음)

우리 문화에서 수치심은 일종의 전염병과도 같습니다.

그것의 수하에서 벗어나서, 진정 서로에게 돌아갈 방법.

수치심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가 아이를 기르고 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보스턴 대학교의 마할릭 교수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여성들에게 '여성상 표준'에 자기를 맞추기 위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답변을 순서대로 보면 착하고, 날씬하고, 겸손하고, 외모와 관련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것.

남자들에게 '남성상 표준'에 자기를 맞추기 위해 추구해야 할 것을 묻자, 그 결과는 감정을 제어하고, 일을 우선으로 두며, 지위를 추구하고, 폭력적일 것.

서로에게 돌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수치심의 해독제는 바로 '공감'이기 때문입니다. 수치심을 배양 접시에 넣고, 그걸 기하급수적으로 팽창시키려면 세가지가 필요합니다.

은폐, 침묵 그리고 비난.

동일한 양의 수치심을 배양접시에 넣고 같은 양의 공감을 집어넣으면 수치심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단 두마디는 바로 이것입니다. "나도 그래!"

마지막으로 같이 생각해볼 얘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가는 길을 찾고 싶다면, 취약성이 그 경로가 되어줄 겁니다.

경기장 밖에 남아 있고 싶다는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압니다. 제 인생 역시 그랬습니다.

이렇게 생각했죠. '내가 강철처럼 강해지고 완벽해지면, 저기 들어가서 본때를 보여주고 말거야.'

그런 유혹이요. 하지만 진실은 뭔지 아세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설령 당신이 완벽해지고 강철처럼 강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보고싶은건 그게 아닙니다.

그저 함께 들어가길 원해요. 

당신과 함께 있고, 서로 교류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무엇이 주어지든 담대하게 대처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6P66ppnn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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